Again 1907집회로 들썩이고 한반도 2007-02-01


100년 전 평양은... 지난 25일 포항서 열린 집회 부흥의 도화선 될 듯


‘Again 1907’ 100년 전 평양대부흥을 꿈꾸는 한국 기독교계의 회개 물결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1907년 평양에서 대부흥이 일어난 지 꼭 100년만의 일이다.
올해 들어 한국교계는 포항 대구 서울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잇따라 ‘Again 1907’ 집회를 열고 있다.
Again 1907 집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열기 또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 집회는 올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한국교계나 한국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교회사에도 한 획을 그을 것으로 국내 교계지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100년 전 이 땅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Again 1907 집회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집회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끝은 어디인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100년 전 평양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07년1월2일 평양.
영하의 날씨 속에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짚신을 신은 평안남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평안남도 남자사경회’가 열리는 평양 장대현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2일부터 15일까지 2주일간 열리는 사경회는 오전 말씀공부, 오후 전도, 저녁 부흥회 순으로 진행됐는데 평양시민들은 저녁집회만 참석이 허용됐다.
사경회의 목적은 ‘성령의 임재하심’이었다.
사도시대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회자되고 있는 평양대부흥은 사경회 막바지 14, 15일 시작됐다.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하루 전 13일 주일저녁 집회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길선주 장로가 말씀을 전했으나, 관중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길 조사의 입에서는 “너희 다 죽었어?”라는 탄식의 말이 흘러 나왔다.
이 관경을 지켜 본 고포드(Steven Goforth)의 말을 빌린다면 막치 놋쇠로 된 지붕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 것처럼 답답했고, 마치 사탄이 온 회중을 압도한 것처럼 그날의 영적분위기는 너무도 차가웠다.
다음날 정오 기도회에 길선주 조사와 모든 선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사경회가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
사건은 이날 저녁 집회에서 일어났다.
당시 부흥회를 인도한 장로교 리(G.Lee)의 증언을 통해 현장을 재구성해 본다.
리는 예배당에 도착한 후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리는 짧게 설교를 마쳤다.
회중들은 함께 통성기도를 했다. 몇 사람이 나와 간증을 했고, 인도자는 찬송을 인도한 후, “집으로 돌아갈 사람은 가고 새벽까지 남아 기도하며 자기 죄를 회개할 사람은 남아 있으라”고 광고했다. 이곳에 모인 1천500여 명 중 500~600 명이 남았다.
기도를 마친 후 회개할 사람이 있느냐고 하자, 한 사람, 두 사람씩 일어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울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루에 몸을 뒹굴며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갑자기 일어난 길선주 장로는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며 약 1년 전 임종직전의 친구가 맡긴 미화 100달러 상당을 훔친 죄를 회개한 후 “내일 아침에 미망인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형제들을 질시했을 뿐만 아니라 방위량(블레어) 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다”며 보기에도 비참할 정도로 땅바닥을 구르며 회개했다.
한 교인이 일어나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
그는 음란과 증오, 특히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했다. 그는 기도하면서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고 온 회중도 따라 울었다.
회중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이튿날 오전10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이것이 한국기독교사에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이었다.
15일 열린 마지막 저녁 집회는 길선주 장로가 인도했으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은밀한 죄까지 다 토로하며 회개했다.
이 놀라운 소식은 삽시간에 평양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남녀가 회개의 역사로 고꾸라져 실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평양은 마치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해 통곡하고 있는 듯했다. 이를 두고 기독교계는 사도시대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역사로 평가하고 있다.
봄이 되면서 평양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의 열기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북으로는 신천과 의주, 남으로는 재령과 서울, 광주, 대구까지 그 열기가 확산됐다.
1907년 1~6월 동안 한반도 전역에서는 부흥을 경험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평양대부흥 어떤 결과 가져 왔나
이 불길은 선교사와 한국인들을 변화시켰고, 우리민족과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영성지위 향상과 신분타파, 의식개혁, 미신타파 등 사회 전반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소돔과 고모라로 일컬어지던 환락의 도시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게 됐다.
한반도에는 기독교 학교도, 병원도 잇따라 세워졌다. 한국교회는 선교 120년, 평양대부흥 100년 만에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부흥했으며, 한국경제 부흥도 동반했다. 크리스천 1천200만 명, 세계선교국 2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진입이 그 열매이다.
무엇보다도 김구, 이승만 등 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졌다.
제헌 국회가 기도로 문을 연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평양 부흥의 현장에 있었던 감리교 무어(J.Z.Moore)는 1907년 선교보고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은 이번 부흥운동으로 한국인들이 다른 식으로는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 체험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수 복음이 이제 값없이 주시는 은총, 충만하고 완전한 구원으로 생생하게 체험되고 있으며, 말 그대로 게으르고 무능하고 무익했던 무리가 변해 엄청난 능력을 지닌 복음전도자들이 됐습니다. 그 뿐 아니라 기독교야말로 한국 백성들의 영적 기갈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음이 증명됐습니다.”

■평양부흥의 시초는 원산부흥
이처럼 사회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평양부흥의 도화선은 1903년 하아디 선교사의 회개에서 시작됐다.
여기서도 철저한 회개가 진정한 부흥을 엿보게 했다.
1903년 중국 의화단 사건으로 원산으로 피신해 온 화이트 선교사(여)와 매컬리 선교사(여)가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모임에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 둘 합류했다. 하아디 의료선교사가 설교자로 초청됐다.
선교열매가 없어 귀국을 고려하고 있던 하아디는 이 기도모임의 세 차례의 설교를 준비하다가 말씀과 만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하아디는 학벌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혀 한국인들을 무시하였음을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이것이 평양대부흥의 도화선이 된 원산부흥의 시초였다.
원산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성령의 불은 강원도 북부지역으로 확산됐다.
하아디는 1906년 8월 평양대부흥의 실질적 도화선이 된 평양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의 연합사경회를 일주일간 인도했다.
이 연합사경회는 그해 11월 시작된 연합사경회로 이어졌다.
마침내 1907년 1월2일부터 평양장대현교회에서 선교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역사적인 평안남도 사경회가 열렸던 것이다.


■Again 1907 집회 배경 및 어떻게 전개되나
평양대부흥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올 해 국내 곳곳에서 평양대부흥의 재현을 바라는 집회가 잇따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0주년 이란 숫자적 의미도 부여할 수 있지만, 북한의 핵위협, 자살률 세계 최고, 알코올 음주 마약 중독자 300만 명, 기독교 성장 정체내지 감소, 사학법 개정에 따른 기독교 학교교육 위기 등에 따른 교회 및 교인들의 회개 및 각성이 절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할 성도들이 올해마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Again 1907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현재 장로교를 비롯해 교파를 초월한 모든 교단과 단체들이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는 올 1월2일부터 21일까지 3주일간 세이레 특별 새벽기도를 열었으며, 이어 25일 포항에서 대구경북연합부흥사경회를 시작으로 전국 10개 권역별 연합부흥사경회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오순절 기간에는 다시 특별 새벽기도에 이어 지교회, 시찰회, 노회별 부흥사경회를 이어가며, 9월에는 서울에서 대대적인 부흥사경회를 열어 회개와 영적각성을 통한 부흥을 간구한다.
4월14~15일은 평양봉수교회 준공식 및 평양남북교회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는 CCC와 오는 7월2일부터 6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국제대학생 콘퍼런스 CM2007대회와 7~8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예장합동 평양 대부흥운동 10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에는 한국대학생 1만5천명과 CM2007에 참석하는 외국대학생 6천명이 참석한다.
행사 후에는 지구촌 미전도 종족과 미사역 캠퍼스 선교에 협력해 나간다.
1월 14일 오후5시부터 서울올림픽 공원체조경기장에서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28시간 열린 '역사를 이루는 기도 Revival2007' 집회에는 연인원 4만 명이 참여, 회개에 이어 부흥을 간구했다.
26, 27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07년 비전과 리더십 공유를 위한 교단장 콘퍼런스’에는 한국 교회 90% 이상을 차지하는 24개 주요 교단장들이 참석, 교회연합을 이끌어 내 관심을 모았다.
교단장들이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해 연합토론회를 가진 것은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평가받았다.
이날 교단장들은 “한국교회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다짐하고 섬김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하는 ‘제주선언’을 발표해 Again 1907운동에 힘을 보탰다.
한국교회 각 교단과 교파, 선교단체들은 올해 하반기 개최할 Again 1907 대규모 연합집회 일정으로 협의하고 있으며, 부흥의 진원지 평양에서의 집회도 계획하고 있다.

Again 1907운동과 관련, CCC(한국대학생 선교회) 김중곤 총재는 “한국교회의 70%를 차지하는 100명 미만의 교회를 돕고, 모든 교회들이 힘을 모으고, 목회자와 목회자가, 목회자와 평신도가 연합하고, 신학과 신앙이 같은 모든 교단과 교회가 연합해 종말론적인 전도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며 “그럴 때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벽이 허물어지고, 개교회주의의 벽도 허물어지고, 사회로부터 잃어버린 교회의 존경도 회복하고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 목사(포항북부교회)는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변혁과 회개로 여는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힌 후 “그러기 위해선 먼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이뤄내야 하고, 정직성(크리스천=정직한 사람)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