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원 목사님(이미 소개해 드려서 다들 아시고 계시지요?)의 무지막지한 지시로 섣달 그믐날엔 현지 빈민가 ‘밥퍼 사역’을 담당하신 최원금 목사님을 도와 가슴 아리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서울서 오신 의료 단기선교 팀을 도와 무료진료를 도왔습니다.
무엇보다 이곳 언어를 할 줄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진료 받겠다고 모여든 환자들 줄 세우고 번호표 나눠주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지요. 그나마도 영어로 번호를 부르면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아서 하나에서 여덟까지만 반복해서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곳 숫자를 열까지도 못 세거든요) 충격적인 것은 학교 선생님들 조차 무료진료 받겠다고 두시간씩 줄 서서 기다리는 겁니다. 그만큼 의료 사각지대라는군요.
구충약을 주는데 그냥 주면 안먹고 팔아버리니까 그 자리에서 꼭 먹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진료를 했답니다.

저야 뭐 의학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 통해서 통역으로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줄 세우고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온갖 얼굴 표정으로 같이 웃으면서 시간 보내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곳 사람들 습관이 눈길만 맞으면 고향서 올라온 애인 보듯이 활짝 웃어 준다는 거지요. 그나마 영어가 되는 몇 사람이랑 이야기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고는 와르르 웃곤 하는 바람에
진료센타가 무슨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해 져서 시끄럽다고 핀잔만 받았습니다.

그나마 이곳 진료센타는 약하지만 에어컨 나오는 실내라 할 만 했었지요.
목사님이 슬그머니 데리고 간 곳은 바깥쪽 땡볕 아래 시멘트 블록으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주방이 있더군요.
어딘가 미인대회 출신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아름다우신 사모님과 여러 청년들이 땀에 퐁당 빠져서(젖은 게 아니라 아예 빠졌더라구요) 닭을 튀기고 밥을 해서 도시락에 담고 있었습니다. 33도 기온에다 닭 튀기는 끓는 기름 앞에 서 있자니 정말 아무 생각 나지 않더군요. 앞으로 아얌 고렝(닭튀김을 이르는 이곳 말)을 먹을 때는
경건히 기도하고 꿇어앉아 먹어야겠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지요.
90인분의 밥과 닭을 튀겨 담아서 도시락을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틱 박스 하나에 30인분씩 담는데 이게 또 보통 무게가 아니더군요. 평소엔 제가 가방 하나만 들고 나와도 냉큼 달려와서 받아주던 우리 운전기사 녀석은
이곳이 교회라는 걸 듣고는 저쪽 그늘에다 차 세워놓고는 코빼기도 뵈어주질 않습니다 (나쁜 시키~).

아무리 봐도 지금 사용중인 것으로는 뵈지 않는 역사로 들어가니 껌껌한 실내에 깨진 유리창이 마치 월남전 알 포인트(영화 보셨나 모르겠네요)로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시꺼멓고 험상궂게 생긴 촌장(?)인지 역장(?)인지 하는 아저씨와 귀엽게 생긴 아가씨(위 사진에서 보면 배식장면에서 밥통 가까이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하나가 나와서 질서도 잡고 하면서 도와 주더군요.
꼬맹이들이 와서 밥을 달라고 하자 아가씨가 기도하고 먹어야 한다고 몸짓을 하면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당최 우리 최목사님은 기도해 줄 생각을 안하는 겁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30명 가까이는 되 뵈는데도 목사님은 그냥 버티시더니 드디어 우리 산적 얼굴의 촌장님께서 기도를 하는 게 아닙니까. 말은 하나도 못알아 듣지만 도중에 뚜렷이 들리는 단어 ‘뚜한’(하나님, 주님 정도로 짐작됩니다. 현지 교회에서도 기도할 때 수도 없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예수스, 마지막에는 아민까지 확실히 갖춘 제대로 된 기도였습니다.

배식이 시작되자 지난주에 내린 비로 자카르타 시내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나온 탓에 아직도 역안 철길은 넘친 하수도 물에 잠겨 있는데 그 구정물 속을 도시락 받겠다고 마치 개울물 건너 마실 나가는 표정으로 첨벙첨벙 건너 오는 겁니다.
게다가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들이 도시락을 받아 가면서 덥썩덥썩 악수하자고 손을 내미는 겁니다.

단기선교 인솔자 집사님께서 출발 전에 몇번을 일러 주시더군요. 밝은 얼굴로 대하고 할 수만 있으면 안아도 주라고요… 한데, 의료선교팀에서는 이곳 사람들이 각종 병원균을 갖고 있거나 대책이 서지 않는 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있다고 면역력 강화 비타민까지 미리 먹이시던데 이걸 어쨌어야 할까요?
에라 모르겠다, 티푸스 옮는 거야 이곳 적응의 한 단계라고 그러고, 다른 큰 병이야 하나님이 책임질 일이지 나야 어쩔 것입니까? 제 짧은 한팔로 안아줘도 쏙 들어오는 가녀린 체구의 할머니부터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마치 연전에 방송에 나왔던 선풍기 아줌마(기억 하실래나~)만큼이나 축축 살점이 늘어진 아낙네들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과 악수하고 안아 줬습니다.
저야 뭐 원래가 선천적으로 밝힘증 환자니만큼 여자들만 안아 줬지요. (사실은 밥 얻으러 오는 것도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지 대부분 여자들과 아이들만 와서 가져 갔습니다. 남자들은 그걸 받아서 먹더군요)

다 나눠주고 나서는 봉사팀이 거기 둘러 앉아서 밥을 먹었습니다.
쳐다보는 눈길을 의식하다 보니 기왕 버린 몸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고 물휴지로 손한번 쓱 닦고는 여기 사람들처럼 손으로 밥알 집어다가 그냥 먹었습니다.

아마 이곳에 와서 한달동안 먹은 병원균보다 이날 한번에 먹은 병원균 숫자가 더 많았을 겁니다.
아직은 제 몸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서 오랫동안 감동이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지난주 예배시간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자카르타에 내린 비로 많은 지역이 침수되고 피해를 입었는데 피해가 없는 사람들이 그동안 잘 살아와서 그런 것도 아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해서 그리된 것도 아니라는…, 단지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그리고 그것이 우리 힘으로, 지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한국은 대단히 훌륭하고 좋은 나라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자리잡은 빌딩(시내 중심가의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른 층에 근무하는 금융회사 여직원들 조차 이따끔씩 한국인이냐고 묻고는 어색한 우리말 인사말 한두마디로 친근감을 나타낼 정도입니다.
특히나 포스코라는 이름은 이곳에선 정말 위력적입니다. 포항서는 별것도 아닌줄 알았던 우리회사 이름 하나가 여기서는 수백명이 기다리는 영화 상영을 15분씩 늦추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별도로 해 드릴께요)
그런데 제가 이런 대단한 포스코에 근무하게 된 것이,
그렇게도 잘난 한국인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
이곳 사람들처럼 마약에 찌들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이,
이렇게 가난에서 헤어날 희망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환경에서 지내지 않게 되었음이,
누구의 덕이었을까요? 누구의 은덕이었을까요?
감사가 물 밀듯이 몰려 왔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몰랐던 아둔함이 얼마나 무의식의 소산인지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은혜로만 산다는 것이 참 실감나게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봉사가 아니라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굳이 이곳으로 가 보라고 지시하신 까닭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이끄시는 방법은 참으로 드라마틱 합니다.
저로서는 아무리 애써도 짐작도 안되는 순간에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당신의 메시지를 던져 주십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제 앞날에 기대를 새롭게 가져봅니다.
다음에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여러분이 참 그리워지는 밤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