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고윤희 선교사예요. 어제의 은혜를 나누고 싶어 한자 적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요.

 

저는 병고침을 위해 기도하면서 응답이 더뎌지는 것 같을 때면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시든지 죽이시든지 알아서 하시라고 한숨 쉬며 그런 생각이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하영인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약속의 씨앗을 붙잡고 해산의 수고로 기도하며 계속해서 믿음으로 붙잡고 인내해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응답이 때가 되면 다 익은 열매로 내 앞에 보여지는 줄 알았지 내 편에서의 믿음의 씨름을 통해 언약이 성취되게 해야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강집사님의 사례를 보며 저도 회개하고 더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산을 해 본 사람으로서 그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힘주기가 몇 차례 있어야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나의 기도는 그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의 씨름의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싹트게 되고 그것이 바로 능력이 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저를 지목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왜 애매모호하게 들리느냐고 호통치셨을 때 마음이 너무 뜨끔했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야지 왜 모르는가? 친밀함이 깊이가 더해져야 한다는 탄식이 밀려왔습니다. 병 때문에 선교지로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냥 한국에 남아 사역하라는 사람들의 말도 다 합리적으로 들렸고 그들도 다 믿음 좋은 분들이셨기에 더 헷갈렸습니다. 기도해도 확신이 들지 않아 기드온이 한 것 처럼 하나님께 싸인을 구했습니다. “내가 입원을 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몸이 많이 좋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니까 그런 일이 있으면 선교지로 나가지 말라는 뜻인 줄 알겠습니다. “ 그런데 정말 제가 난소 종양으로 1월에 입원을 한 것입니다. 병상에서 계속 물었습니다. “이제 입원했으니 정말 나가지 말라는 뜻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선교지에 가고 안 가고가 그렇게 중요하니? 네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역을 하는지가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너와 이 병상에서 깊이 교제하길 원한다.” 결국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역에 집중했던 내 죄를 회개했고 그 입원기간이 영적으로도 회복의 기간이 되었습니다.

 

어제 안수 기도 받을 때 사역에 대한 열정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열정보다 크면 내 힘이 못 따라가고 그래서 지치고 병이 든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사역이 저절로 되어 지는 경험도 많았지만 종종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전에 마음만 앞서 혼자서 일하며 지치고 외로워 했던 적도 있었음이 생각나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을 정도로 친밀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걸음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 지 확신이 없고 그래서 기드온처럼 싸인이나 구하면서 긴가 민가 했던 것이 믿음의 연약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안수기도 해 주실 때 혼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다고 하셨지요? (혼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설명좀…) 아무튼 앞으로 이런 부분을 놓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5월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워보려고 합니다. 해 주신 말씀들이 다 이해는 안되도 일단 다 적어 놓았습니다. 서서히 깨달아 지겠지요. 여호수아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을 생각하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