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에 제자훈련중 썼던 독후감인데..다시 읽고 마음을 잡으며
사순절 기간 주님의 은혜의 기대감으로 기도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사역훈련 말씀이 다 저에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아 은혜가운데 하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리며..기도로 응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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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도할까를 읽고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주님을 통해 자극을 받지 않는다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기도의 자극을 받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 안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면 그 영혼이 시들시들한 화초처럼 병들어 버립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엎드려서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세요. 우리를 위하여 밤중에도
주무시지 않고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세요.
날마다 한적한 곳에 나가서 이슬을 맞으며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세요.
그 주님을 볼 때 기도하지 않는 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건방진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했지만 이 구절이 와 닿았다.
계속해서 읽는 내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기도는 불교신자든 이슬람 신자든 누구나 기도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중얼 중얼 우리의 필요에 기도를 하다 보면 그분들이랑 기도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뜻하신 기도 바른 기도를 배워야 하는 부분에 알기 쉽게 우리가 이해하도록 실천하도록 잘 정리되어있었다. 주기도문을 바탕으로 하는 기도가 얼마나 바른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 그 자체고 예수 믿는 사람이 무시로 기도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해야만 살 수 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든지, 몇 번이든지,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놓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이것을 성경적인 용어로 Compassion 이라고 한다.
주님이 표현하신 대로 민망히 여긴다. 불쌍히 여긴다라는 말과 같다.
만약 당신이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었을 때에 계속 어떤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이웃에 대한 관심을 계속 계발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그럴때 당신은 어떻게 해야하나?
그 사람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바빠도 기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중보기도의 특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에 순종해야 한다.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실 때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성령의 뜻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이런 중보기도의 특권 때문에 한스 큉이라는 학자는 매우 의미있는 말을 했다.

“우리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형제들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고통과 고난을 함께 나누며 죄 짐을 같이 지며 매사에 동고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제사장들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직이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며, 그 대신 우리자신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대목이 와 닿았다..
중보기도의 은사를 주셨고 잘 써야 하지만 막막하고 웬지 어리석어 보이는 것 같은 생각이 밀려왔다..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기도의 삶으로 이끌어가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약 5: 16.17)

우리가 기도하면 엘리야의 기도와 같은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기도의 능력을 나 하나만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청평수력발전소와 같은 엄청난 시설을 만들어 놓고 그 전력을 날마다 어떤 가정집에만 공급해 주어 사용하게 한다면 얼마나 난센스 같은 이야기냐? 큰 발전소를 개인이 혼자서 쓰고 있다니 얼마나 손해냐?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 기도의 능력을 가지고 나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제사장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일 뿐만 아니라 기도의 능력자체에도 걸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육체의 병든자가 많다.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합심해서 기도를 아니함으로 인하여 그들이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자가 있다.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해주었다면 벌써 그 가난이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신음하며 고통하는 가정이 있다.우리가 그들을 외면 하지 않고 그 짐을 함께 지고 함께 울며 기도했더라면 그 가정들이 벌써 고통에서 해방되었을텐데, 우리가 중보의 희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가정들이 고통속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양심의 가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이 밖에도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장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시급한 기도제목이 얼마나 첩첩히 쌓여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게을리해서 우리는 너무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기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책에서 와닿은 부분을 써 보았다.
옥한흠 목사님은 중보기도의 에시를 아들을 잃은 이블린 부인의 예시를 통해 나에게 기도할 것을 더 구체적으로 동기부여가 되었다.
주기도문 우리가 거룩해지길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알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