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게로 나아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사랑하는 동 역 자 여러분,
캄보디아 프놈펜 발 비행기에 올라 방콕, 타이페이를 경유하여 인천에 도착하자 마신 한국의 차가운 겨울 공기. 그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 닿자마자 문득 엄습해오는 인도차이나의 강렬한 햇살에 대한 그리움. 단지 기후의 차이로 인해 감정의 변화를 겪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에 스며져 오는 묘한 감정들. 짧은 9박 10일의 기간 가운데 도대체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부어 주셨고 제 마음을 도전시켜주셨는지 여러분과 함께 그 여정들을 밟아가면서 나누고자 합니다.
순탄치 않았던 출발
가정의 경제적 사정의 악화, 대학 4학년의 부담감, 그리고 한풀 꺾여버린 열정. 2007년은 이렇게 우울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해보겠다는 다짐도 자꾸만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오고 앞으로 갈려고 해도 내 앞에 엄청난 큰 벽이 나를 가로 막고 있다는 느낌에 좌절감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은혜의 자리로 저를 초청하셨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함께 한 동역자들을 통해 이번 캄보디아 비전트립으로 저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출국 하루 전까지 가느냐 마느냐에 목메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재정을 채우심으로 기어코 캄보디아로 보내셨습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새 일을 행하겠다. 이 전에 네가 경험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도우시고 만지시는 하나님
프놈펜 공항 앞의 시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와 구걸하는 사람들. 무엇인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우수에 찬 눈빛들. 우리나라 7-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도심의 거리. 짧지만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대한 첫 인상이었습니다. 이성민 선교사님의 인도에 따라 저희 일행은 비전 트립의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주 사역인 성경학교 사역에 앞서 캄보디아의 아픔과 원한이 묻혀 있는 킬링필드와 뚤슬렝(학교를 감옥으로 개조하여 온갖 고문을 일삼은 비극적인 현장)을 방문하여 이 민족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폴 포트 정권이 수많은 지식인들을 죽인 만행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고 이 백성들은 어떠한 소망도 없다는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곳에서 기도하기를, 육적으로는 가난하나 가난한 자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복음으로 부하게 하시며 하나님으로 인해 그들 삶에 소망이 있게 되어 질 것이라는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치하와 6.25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진 것 같이 말입니다.
가라앉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저희는 곧바로 축 센터(선교사님의 지방사역 중심센터)로 이동하여 캄폿 주에 위치한 쭘끼리 지역과 당뚱 지역에서의 성경학교 사역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500여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밤새 깊은 토론을 하며 준비했습니다. 사실 출발 과정에서 팀원들이 겪은 영적전쟁들로 인해 준비가 부족했기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에 민감하여 깨어 있었고 주께서 우리도 예상할 수 없었던 팀웍을 이루어주셔서 성령의 번뜩이는 지혜로 순간순간의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이들이 캄보디아 민족을 주께로 인도할 것이라는 기대에 벅차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이들 마음 가운데 지속적으로 사랑을 부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이 복음과 주님의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성경학교의 사역을 마치고 방문한 고엘 공동체(천연염색업을 통해 마을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고 복음을 제시하는 빌리지 미션을 꿈꾸는 공동체)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누는 삶으로 사역해 오신 선교사님 부부의 삶을 보면서 우리 청년들이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해야 하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유
NPIC(한.캄보디아 정부 합작 기술대학)과 프놈펜 법대 방문. 그 곳에서 펼쳐진 캠퍼스 전도. 그리고 프놈펜 그리스도 사랑의 교회에서 나눈 캄보디아 지체들과의 교제.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강한 도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땅의 백성들이 너희들을 필요로 한다고, 100년 전 수많은 선교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조선 땅을 밟았던 것처럼 너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와 함께 교제했던 쏘피읍이라는 형제는 제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저는 당신이 캄보디아로 다시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이곳에 다시 오셔서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그 형제는 늘 방문하는 단기 팀들에게 해 오던 대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큰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땅은 복음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목마른 그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적셔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긍휼의 사도가 되어
인천으로 돌아오자마자 제 마음에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대학 4학년이라는 부담감을 떠안고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제 미래가 달려 있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다녀와서 지난 시간들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제 미래는 저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해 온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더욱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탐꾼 갈렙이 모두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믿음의 눈으로 희망을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제가 남들이 볼 수 없는 희망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캄보디아 비전트립은 제게 있어서 믿음의 야성을 회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해 왔던 저에게 주님은 다시금 저에게 뜨거운 열정을 부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학업으로 돌아와 남은 1년을 제 유익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공부할 것입니다. 윌리엄 캐리가 복음 전도의 열정으로 5개 국어를 배웠던 것처럼 저 역시 사도적 열정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여전히 제게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게로 나아올 자가 없다고 말입니다. 유일한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사는 보경이가 되겠습니다.
목사님,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준비하여 기둥같이 쓰임받기를
든든하다. 기대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