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에 대해서 이상한(?)점이 있어서 목사님께 여쭤보려고 합니다.
(목사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것이 조금 어렵지만,, 전 더이상 예수님을 믿지않는 불신자 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가끔씩 나갑니다.)
불과 십수년 사이에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교회 안에서 기타치며 찬양하던 한 청년을 목사님이 멱살을 쥐고 밖으로 쫓아냈다는
일화가 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나게 바뀌었죠.
찬양으로만 본다면 거의 종교개혁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CCM이나 요즘 청년들이 부르는 찬양에 대해서 회의 적입니다.
한때 '경배와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찬양의 붐이 일었을때,
수많은 외국 찬양(엄격히 말해서 제가 찬양이라고 하는것은 모두 찬송가라고 해야겠지만,, 편의상
찬양이라고 말하는것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왔고
만들어 졌습니다.
잠시 이때를 회상해보면 당시에는 '렙'은 흑인들로부터 나온 악마의 노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
니다.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기 보다는 하나의 확신과 믿음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렙으로 부르는 찬양 정말 많습니다.
어떻게 종교적인 믿음이, 확신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런 사례는 정말 많은데,
대표적으로 한가지 말해보면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목사님은 아시죠?) 찰스 스펄전
이 분인지,, 아니라도 이분에 버금가는 영적인 지도자 한분은 노예제도에 대해서 찬성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돼죠.
어떻게 그때의 하나님과 지금의 하나님은 동일한데, 당시의 믿음과 확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달라질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있는 믿음과 확신도 세월따라 달라지는것이 아닐까요.
내친김에 성경의 변천사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들어가보면 머리는 더 어지러워 집니다.
왜 우리는 진리를 진리라고 믿으면서 그 진리를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는걸까요.
왜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을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마다 다르게 해석할까요.
그 각각 다른 해석에대한 그 분들의 확신은 모두 진리에 대한 확신이 아닙니까..
하니의 진리에 대한 다른 확신들을 하나님은 왜 방관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요즘 교회에서 세상 문화에 침투(?)하기 위해서 만드는 많은 프로그램들은..
교회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교회적인 생각인가요?
세상을 향해서 열려있고 교회의 문턱을 낮추며, 세상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교회적인 시도들
(대표적으로 CCM이 있겠네요.)은 과연 성경적인 것일까요. 진리일까요.
현대 교회들이 시도하고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을 예전의 영적 지도자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세상과의 타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만약 지금 교회들이 하는 생각이 진리라고 한다면,
초대교회는 투구와 옷에 십자가를 새긴 기독교 전사를 로마 원형 경기장에 내보냈어야 하지 않나요.
결국.. 이런 기독교에 대한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이야기 하다가 보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것을 보면 기독교는 결국 인간의 연약함 만이 남은. 그것뿐인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 때문에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은혜가 있다고 하지만,,
만약..
정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존재하고.
그 분께서 자신의 아들을 죄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믿는, 이 구원의 열쇠를 가진 기독교인이 이렇게 가만히 있는것이 정상인가요??
인간의 연약함만을 읊조리면서 하루하루 사는것이 맞는가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나요?
천지를. 우주를 쥐어 흔드는 신이 존재하고, 그런 분이 자기 편인데. 그런 확신이 있는데
왜 기독교 인들은 이렇게 연약한가하는 부분이 이해가되질 않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들이 왜 인간의 연약함만을 핑계대는지 말이죠..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전 예수를 떠난 불신자입니다.
저 또한 믿어봤고. 확신했었지만 소위 그분의 빽으로 당차게 세상을 향해 돌진하고 증거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줄 압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하나님이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과 싸울 아무런 힘도 주지않는다는것이,
그리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이 있다면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것이 더 불신으로 다가옵니다.
아.. 찬양(찬송가)에 대해서 목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글쓰기 시작했는데
그만 다른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찬양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한것도 이런 부분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자리에서 '드럼'하나만 빠져도 있을때와 없을때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예전부터 불러오던 고전적인(?) 찬송가 부를 때(예외적인 찬송가도 있습니다.), 한번 보싶시오.
누가 손들고 찬양하는지.
요즘 부르는 음악적으로 기,승,전,결 아주 잘짜여진 찬양을 부를때만 사람들은 감동받습니다.
가사 또한 잘 읽어 보시면 누구나 읽어봐도 자극 받을 만한 '감성적'이고 '선동적인'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건 절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음악적인 감동입니다.
만약 찬양을 부를때 음악적인 장치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동일하게 있다면
어떤 찬양을 부르던지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과 행동, 표정을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찬양에 따라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악적인 수준(?)에 따라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찬양부를때 음악과 감성적인 가사서 받는 감동은..
어떤 종류의 가요나, 운동가를 부를때 느끼는 감동과 희열과 확신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좀더 음악적으로 멋지고 좋은 가사로된 찬양을 할때 더 성령충만 받는건가요?
그때는 성령님이 더 마음속 깊이 들어오시는건가요?
이렇게 본다면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믿음'은 '느낌'에 의존된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느낌을 뿐일테죠.
사람이 아주 감동적이고 도전을 주는 책을 읽었을때 그 책대로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듯이.
기독교인들도 매주 교회에서 비슷한 주제의 감동적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정서를 울렁이게하는 좋은 노래를 부르면서 이것이 성령 충만이라고 이것이 믿음과 확신과 은혜라고
확신하는것이죠.
그래서 부흥회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을때. 말을 재밌고 감동적이게 하는 강사가 왔을때
교회는 확 뜨거워 졌다가 서서히 식고 하는것을 반복하는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만약 그때 받은 감동과 은혜가 신에게 부터 온것이라면,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소위 '증인'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세상을 떠들석 하게할 수많은 기적과 증거들이
기독교 인들로 부터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믿음과 확신 또한 시간에 밀려 약해지거나 해서는 안돼는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쉽게 인간의 패턴에 맞춰서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합니다.
이건 신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교회들을 보세요.
지나간 찬양에 사람들은 더이상 감동 받지 않고,
감성에 대한 역치값은 더욱 더 올라갑니다.
예전에는 기타도 못치게하고, 요즘 부르는 찬양을 들으면 펄쩍뛰고 뒤집어질 교회들이
말씀과 믿음에대한 감동이 아니라 감성에대한 역치값이 올라가서,
조용하고 엄숙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예배시간에도 요즘 찬양을 부릅니다..
우리 교회도 예배 끝날때 느낌좋고 가사좋은 찬양 한곡 부르면서 마치지 않습니까.
한참 경배와 찬양 바람이 불때
우리 나라에 대표적인 찬양팀 리더 한분이 말씀하신..
앞으로 만들어질 찬양에 대해서 어떤 음악적인 한계를 둬야한다는 - 여기서 음악적인 어떤효과를
제한 하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었지만 오래전 일이라 잘 생각이 나질 않네요.-
그 분의 주장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아.. 결국 제 말은 제가 두서없이 말한 이 찬양에 대한.
그리고 찬양팀 리더분이 말씀하신 이 말에 대해서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사시냐고 묻고 싶어서
글 쓰기 시작했는데 많이 뒤엉켜 버렸네요.
두서 없는 글이지만, 목사님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어쩌면 제 불신에대한 스스로의 두려움이 이 글을 쓰게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만약에 신이 있다면? 사후 세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은 문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생각하며 걱정해보는 주제일 테니까요.
토요일이네요.
좋은 주말 보내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허락하신다면 제 불신에대하서 한번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다만 지적인 회의주의자이지요. 예수안에서 방황하는---
언젠가는 참 생명의 주님을 심령으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성이 지성을 끌고가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발달된 지성이 타락한 죄성을 따라 우리를 온통 혼란과 회의로 끌고가지요.
사랑은 지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출발하여 그 은혜속에서 지성이 정돈되어야 겠지요.
찬양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질문과 생각들을 나열하신 것 같아 다 대답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나님도 시편에서 새노래로 찬양하라 그랬습니다.
찬양에 깊은 주님을 향한 사랑 고백과 영성이 베어있다면 형식은 지나치지만 않다면 다양하게 수용하고 싶습니다.
아시나요. 피아노가 예전에는 술집용 악기였다는 사실, 그리고 마틴 루터의 찬송이 당시의 유행가에 덧붙여져 불려진 곡이라는 것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얻는 다는 복음의 영적 본질은 변함이 었습니다. 앞으로 수천만녕이 지나도 말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계속 자극할 수 있어야지요. 복음이 복음되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서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끝납니다.
형제의 불신앙이 아닌 신앙의 방황이 속히 끝나기를 바라며---